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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필드 신드롬’을 일으킨 바로 그 소설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그만 어린애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것을 항상 눈에 그려 본단 말이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 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 주는 거지.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야.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어. 그러나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은 그것밖에 없어."

    이번에 소개할 책은 1951년 출판 당시 전 미국 대륙에 '콜필드 신드롬'을 일으킨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지독한 사춘기를 겪고 있는 '홀든 콜필드'라는 한 고등학생의 투덜거림과 방황을 잔뜩 풀어놓은 소설이다. 이 책이야말로 청소년 권장도서로 추천할 만하다. 생소한 단어도 적을뿐더러 함축된 의미를 비교적 쉽게 유추해볼 수 있어서 『데미안』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읽혔던 것 같다. 이 소설은 주인공 ‘홀든’의 시점에서 거짓과 허영으로 가득 찬 펜시고등학교와 비정상적이고 위선자 같은 주변 어른들의 모습을 꼬집는다. “어쭈, 고작 16살짜리가?”라는 생각으로 읽다 보면 중반쯤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저, 나를 꼭 안아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야.

    16살의 소년 홀든 콜필드. 미국으로 치면 그는 고등학교 3학년이다. 키는 189cm에 일찍 나버린 흰머리 때문에 사람들은 홀든을 어른인 줄로 착각하곤 한다. 그에겐 변호사 아버지, 전업주부인 어머니와 할리우드 작가로 활동하는 형, 그리고 끔찍이 사랑하는 여동생 피비가 있다. 이야기는 홀든이 다니던 펜시고등학교에서 퇴학 통지서를 받게 된 날로부터 시작된다.

    홀든이 학교를 싫어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펜시고등학교는 본인들이 얼마나 유서 깊은 역사와 명철한 학생들을 양성해왔는지를 자랑하듯 얘기하지만 홀든은 말도 안 되는 X소리라고 생각한다. 학교엔 창의적이고 명석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거니와 그런 학생은 애당초 학교에서 양성된다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싫어하는 학교로부터 퇴학 통지서를 받게 된 홀든. 그것도 이번이 4번째다. 학교에서는 홀든을 붙잡아주는 선생님도 없다. 심지어 역사 담당 스펜서 선생이 홀든과의 면담에서 마지막으로 한 이야기라고는 “행운을 빈다!”가 전부였다. 그 와중에 기숙사 방을 같이 쓰던 룸메이트와도 크게 다투게 된 홀든은 정식으로 퇴학당하기도 전에 제 발로 짐을 싸고 학교를 나와 뉴욕 시가를 헤맨다. 평소 좋아하던 빨간 사냥 모자를 거꾸로 돌려쓴 채로 말이다.

    출 1일 차. 홀든은 할머니로부터 생일에 받아두었던 용돈을 들고 호텔로 향한다. 호텔 방으로 들어와 창문을 열어젖히고 자유의 기분을 만끽하려던 찰나, 건너편 건물 창문에서 여러 이상한 모습들을 목격한다. 학교에선 홀든만 문제아인 것 같았는데, 여기 와서 보니 본인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놈의 호텔은 변태와 얼간이로 가득 차 있었다.

    저녁이 되자 홀든은 잔뜩 차려입고 클럽에서 놀다가 술값 덤터기를 맞고 용돈의 대부분을 탕진한다. 심지어 홀든은 자신의 신분을 들킬까 봐 두려워 콜라만 마셨는데 말이다. 허전한 마음으로 호텔 방으로 돌아가는 홀든. 엘리베이터에서 외로움을 달랠 여자를 소개해주겠다는 호텔 직원의 말을 거절하지 못하고 만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잠시 후 홀든의 방으로 여자가 찾아왔고,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옷부터 벗기 시작하지만 홀든이 어르고 달래 돈은 그대로 지불하는 대가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낮에 빈둥거리다 밤에는 이 일을 한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가 울적해진 홀든. 혼자 있고 싶어 져 그녀를 방에서 내보내는데, 얼마 후 갑자기 그 여자와 여자를 소개해준 호텔 직원이 함께 찾아와 더 많은 돈을 요구한다. 그러다 싸움이 붙었고, 주먹질에 아픈 배를 쥐어 잡다가 홀든은 쓰러지듯 잠을 청한다. 다음날 아침 브런치를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와 토스트를 먹고 있던 수녀들과 구세군 바구니를 보게 되었다. 그 모습이 너무 짠했던 홀든은 10달러를 그 자리에서 기부한다. 나중에선 10달러밖에 기부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샐리와 공연을 보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돈이란 항상 끝판에 가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그리고 극장 앞에서 샐리를 만난 홀든은 잘 차려입고 나온 그녀를 보고 갑작스레 사랑에 빠지고, 샐리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해버린다. 연극은 재미없었지만 손 잡고 있는 건 너무 좋았다. 그리고 나와서 스케이트를 타러 나갔다. 발이 아파 구석에 있는 바(bar)로 건너간 두 사람. 홀든은 샐리에게 이곳에서 도망치자고 제안한다. 자신이 아직은 직업이 없어 돈벌이가 부족하지만, 장작도 패고 일자리도 곧 마련해서 그녀를 책임지겠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샐리는 그건 너무나 큰 환상이라며 현실적인 말들로 쏘아붙인다. 샐리의 거절에 김이 식어버린 홀든은 “어차피 나도 너랑 있는 게 그렇게 좋지만은 않아.”라며 샐리의 곁에서 떠나버린다. 이게 웬 변덕인가.. 샐리와 헤어진 후 홀든은 비 오는 밤거리를 혼자 걷는데 눈물이 흐른다. 너무 외롭고 괴로운 나머지 여동생 피비가 보고 싶어 집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피비는 똑똑한 아이다. 오빠가 학교에서 퇴학당한 걸 눈치챈 피비는 홀든에게 한심한 듯 물어본다. “오빠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다 싫다는 거야? 오빤 도대체 좋아하는 게 뭐야?” 홀든이 떠오른 것은 식당에서 수녀들을 만나 10달러밖에 기부하지 않았던 것과 학교에서 왜소한 몸집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던 친구, 그리고 일찍 세상을 떠난 남동생 앨리였다. “아니, 그건 실체가 아니잖아. 현실적으로 오빠가 되고 싶은 게 뭐냐고? 장래희망을 말해봐." 홀든은 넓은 호밀밭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만일 될 수만 있다면 호리든은 그 호밀밭 끝 아득한 절벽 앞에 서서 꼬마들이 떨어질 것 같을 때 언제든지 나타나 재빨리 잡아주고 싶었다.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 말이다. 피비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홀든을 꼭 안아 주었다. 홀든은 어찌할 수가 없이 오랫동안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그리곤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귀가로 인해 그는 다시 집을 뛰쳐나간다.

    결국 역에서 하룻밤을 노숙하고 일어난 홀든. 피비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전하고 서부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곳에선 귀먹은 벙어리 행세를 할 참이었다. 그때 갑자기 어젯밤 자신이 주고 온 빨간 사냥 모자를 쓰고, 자기 몸 만한 트렁크를 끌고 역에 나타난 피비를 보고 홀든은 까무러쳤다. 자신도 데려가라는 피비를 어르고 달래다 피비가 좋아하는 동물원 엘 데리고 간다. 피비를 회전목마에 태워주고는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홀든. 갑자기 비가 내리고 사람들은 비를 피하기 바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홀든은 행복함을 느낀다. 너무 행복하고 기분이 좋아서 크게 소리치고 싶었다. 파란 외투를 입은 피비가 목마 위에서 빙빙 돌고 있는 모습. 이건 너무나 멋있었다.

    우린 어른이라고 불릴 수 있을 만큼 ‘어른’이 되었을까?

    일찍 나버린 흰머리처럼 홀든이 일찍 깨달아버린 세상의 부조리와 타락의 혼돈. 이 모든 걸 홀로 혹독하게 겪어낸 16살 소년이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확실한 건 이 모든 이야기를 그저 ‘사흘간의 방황’로 치부하기엔 홀든은 요즘의 어른보다 더 성숙하다는 점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너 그렇게 순진해서 뭐해 먹고살래?”, “그건 너무 바보 같고 아이 같은 생각이야” 등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일명 어른들의 화법. 작가는 홀든이라는 주인공을 통해 “그렇다면 그 ‘어른’이라는 당신은 뭘 했는데?”라고 묻고 있다.

    홀든은 책의 마지막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고백한다. 이 책의 제목이 대체 왜 ‘호밀밭의 파수꾼’인지가 마지막에서 밝혀지는데, 이는 작가가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를 응축해 놓은 단어라 생각한다. 꼬마들이 뛰어노는 평화로운 호밀밭은 ‘순수함’을 상징한다. 그리고 꼬마들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잘 잡아주는 역할의 파수꾼이 되고 싶은 홀든. 이는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존재가 순수를 잃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의미와 동시에, 자신에게는 그런 길라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어른’의 존재가 부재했다는 점을 돌려 말한다. 그토록 방황했던 홀든이 마지막에 피비에게 안겨 눈물을 흘리고, 피비와 함께 간 동물원에서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던 것은 아마 피비가 자신의 순수의 세계관을 공감하고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 어떤 어른 또는 어떤 존재로 남고 싶은가? 또, 우리는 진정 ‘어른’이라고 불릴 수 있을 만큼 ‘어른’이 되었을까? 인간 본성의 선함과 순수함을 되찾아 가는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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