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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주는 무거움과 완독 후의 가벼움

    여러분은 세계 고전문학을 좋아하시나요? 그렇다면 어떤 고전문학을 가장 재밌게 보셨는지요? 저는 『데미안』과 『노인과 바다』를 제일 재미있게 읽었고, 그다음 정도가 되는 책이 오늘 소개해드리는 책이 되겠습니다. 바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인데요. 제목부터 벌써 어렵지 않으신가요? (저는 그랬습니다..) 참을 수 없다는 게 존재인지, 존재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다는 것인지… 사실 둘 중 어느 하나가 맞다고 하더라도 쉽게 와닿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원래 이 책의 원문판 제목을 그대로 직역하면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 책을 처음으로 번역한 출판사(민음사, 1988년 당시)에서 ‘참을 수 없는’이 맨 앞으로 와야지 책이 잘 팔릴 것이라는 이유로 어순을 바꿨다고 해요. (딱히 근거는 없지만 그럴듯합니다?!) 아무튼 개인적으론 제목부터 어려워서 이 책을 읽어보기로 결정하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플라이북 어플에 써놓은 리뷰를 보니 딱 작년 이맘때쯤 읽었네요.) 혹시 저처럼 제목 때문에 읽어보기를 꺼리시는 분이 계신다면 그런 걱정 마시라는 말씀과 함께 책 리뷰를 시작해봅니다.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시길 추천드려요.

    체코판 '사랑과 전쟁', 인생은 끝없는 저울질

    이 책에는 남녀 4명이 등장합니다. 토마시, 테레사, 사비나, 그리고 프란츠라는 이름의 주인공들이죠. 그리고 이 네 명의 인물들의 인생관이 진지한지 가벼운지 그 대립구도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사실 깊은 고민 없이 술술 읽다 보면 체코판 '사랑과 전쟁'으로 가볍게 읽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작품의 배경이 된 ‘프라하의 봄’ 운동과 그 이념 간의 갈등 속에서 네 명의 주인공들이 취하는 삶에 대한 태도에 무게를 둔다면 또 깊은 생각거리를 제공하는데요. 독자로 하여금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주제로 끊임없이 질문과 답을 찾아가도록 유도하죠. 저는 가장 가볍게 사랑에 관련해 느낀 점을 리뷰로 남겨보려고 합니다. (찡긋-)

    주인공 토마시와 사비나는 자유로운 사랑과 연애를 추구해요. 특히 토마시는 정신적인 사랑과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를 핑계로 아내인 테레사를 두고 사비나와 불륜을 저지르기도 하죠. (저는 순전히 불륜을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도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관계가 정반대의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어느 것이 더 우월한가요? 우리의 행동과 머릿속에는 이러한 이분법이 끊임없이 작용합니다. 육체와 영혼, 우연과 운명, 자유와 의무, 농담과 진지함… 이렇게요. 하지만 의무가 완전히 배제된 자유는 없고, 가장 가벼운 농담 속에 삶의 진실이 숨어있기도 하듯, 인생은 단순히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이 서로 엮여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인생의 모순이 되는 것이죠. 인생에는 정답과 진리가 없으므로, 우리는 무거운지 가벼운지 끊임없이 저울질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당신은 진지한 사람인가요? 가벼운 사람인가요?

    저는 요즘 누군가 제 인생에 해답을 좀 찾아줬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합니다. 적어도 삼지 선다 객관식으로라도 옵션이 주어진다면 고민도 없고 참 좋겠습니다. 무엇이 옳은 선택일지 끊임없이 고민하지만 사실 정답은 없는 이 모순된 진동이 너무 버겁기도 하고요.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고민들이 삶을 이끄는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열심히 살아보고자 발버둥 치는 거죠. 이런 걸 보면 저는 (밀란 쿤데라의 말을 빌리자면) 진지하고 무거운 편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여러분은 진지한 사람인가요? 가벼운 사람인가요? 어느 한쪽이 나쁘다거나 틀린 것이 아닙니다. 작가는 이 상대적 무게감을 딱히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뉘앙스로 나누지 않아요. 해서 저는 이 책을 읽고 일종의 깨우침을 얻은 것 같습니다. "아, 굳이 모든 면에서 진지할 필요는 없겠구나. 때로는 가벼운 것이 무거움을 대변할 수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말이에요.

    책의 마지막 챕터에서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갈등하던 토마시와 테레사도 결국 중간 지점에서 서로를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특히 마지막 챕터 곳곳에서 자주 보이는 독일어 문장이 있는데요. 바로 "Es muss sein!"이라는 문장입니다. 직역하자면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로 풀이돼요. 처음에는 이 문장이 "Muss es sein? (그래야만 하는가?)"이었습니다. 토마시에게 테레사와의 관계는 처음엔 의문 투성이었지만, 결국 마지막엔 그럴 수밖에 없는 필연과 확언의 문장으로 관계를 정의 내립니다. 두 사람이 저울의 가운데에서 만나 평온을 찾은 것이죠. 처음엔 가벼운 우연으로 시작되어 서로 끊임없이 뒤틀려왔지만 토마시는 결국 테레사의 무게에 기꺼이 기울고, 그의 삶의 질량이 올라가게 되는 책의 마지막 내용이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새로운 관계를 준비중인 (저를 포함한..) 남과 여, 그리고 연인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네요. "꼭 이 사람이어야만 하나?"를 스스로 물어보세요. 만약 "그렇다! 반드시 이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축하합니다. 당신은 우연처럼 필연을 만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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