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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재밌는 책을 읽었습니다. 

    최근에 책과 권태기가 오는 바람에 몇 페이지만 슬쩍 읽다가 덮어버린 책들이 방구석에 한 뭉텅이로 쌓였었는데요.. 이 책은 읽기 시작한 지 하루 만에 다 읽었습니다.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을 찾고 계신다면 (그리고 N연차 직장인이시라면) 지금 당장 이 책을 꼭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낄낄대면서 시간 때우기 참 좋거든요. 권선징악적 스토리라인 덕에 은근히 스트레스도 풀립니다. 

     

    이 책을 쓴 사람 역시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작가라고 불리기엔 아직은 멋쩍은 모 기업의 11년 차 과장님이시죠. 작가는 출근 시간보다 한참 일찍인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왔다고 해요. 자신은 아침형 인간이 절대 아니라던 작가님의 인터뷰 내용이 제법 충격적입니다.. 첫차를 타고 회사에 오면 6시 10분 정도가 되었다고 해요. 초반에는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고, 일기를 쓰거나 하루 일과를 미리 준비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문득 김 부장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써보고 싶으셨대요. 은퇴를 코앞에 두신 주변 부장님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바탕으로 김 부장이라는 하나의 캐릭터를 탄생시킨 거죠. 그래서 이 책은 소설이지만 지독하리만큼 사실적입니다. "대한민국 직장인 사찰 보고서"라고 불릴 정도니까요. 혹시나 직장 생활을 꽤나 오래 하신 분들은 뼈를 두들겨 맞을 수도 있으니.. 주의하세요. ^^

     

    김 부장은 모 대기업에 25년째 근무 중이다.

    이 책의 가장 첫 페이지 첫 문장입니다. 벌써 느낌이 팍 오죠? 네, 맞습니다. 김 부장은 전형적인 "꼰대"입니다. 사실 저는 "꼰대"라는 단어를 싫어합니다만 이 단어 말고는 김 부장을 완벽하게 설명할 길이 없네요. 그는 현모양처 아내와 함께 대학생 아들을 슬하에 두었고, 1억이라는 고액 연봉과 대기업 복지로 매우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부장이 되기 전까지는요.. 부장이 되고 나니 동기들이 하나둘씩 퇴사하기 시작합니다. 25년 차 눈칫밥으로 계산해보면 그다음은 아마 김 부장 자신일 겁니다. 김 부장의 시야에 갑자기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해요. 옆팀 최부장이 왜 갑자기 상사들과 함께하는 주말 골프모임에 등장하게 되었는지, 부동산 문제로 고민하는 직장 동료들이 왜 김 부장 본인을 놔두고 다들 송 과장을 찾아가는지... 25년째 자존심이 밥 먹여준 김 부장은 궁금한 것 투성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상무가 김 부장을 호출합니다. 결국 김 부장은 서울을 벗어난 지방 어느 공장 안전관리팀으로 사실상 좌천돼요. 스스로 우월하다고 믿으며 살아온 김 부장은 결국 고립됩니다. 그는 공장에서도 불만만 잔뜩 늘어놓다가 얼마 버티지 못하고 퇴직금 2억 원과 함께 30년이 가까운 회사생활을 접고 말죠. 이제는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도 없어 먹고살 길이 막막합니다. 설상가상으로 김 부장은 부동산 사기까지 당하고 말아요. 그동안 모아둔 전재산과 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금까지 총 7억 원을 투자했는데 말이에요. 후련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도 없는 김 부장은 마음의 병을 얻고 공황장애에 걸리고 맙니다. 처음엔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다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조금씩 안정을 찾는 모습을 보여요. 희망적인 결말로 마무리되는 듯하다가, 우연히 외제차를 끌고 온 정 대리를 마주칩니다. 그리고 다음 2권으로 내용이 이어져요.

     

    꼰대도 꼰대가 되고 싶진 않았을 겁니다...

    저라고 서른 살이 되고 싶었을까요? (그래도 아직은 젊다고 생각합니다만..) 우리는 모두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자연스레 기성세대가 되기 마련입니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갈등은 소위 "요즘 것들"과 "꼰대"들의 대립구도로 늘 흘러왔던 문제죠.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세상 풍속이 쇠퇴해져 선비의 본분을 잃은 '요즘 것들'을 개탄하는 내용이 있다고 해요. 아마 조선 그 이전 고려시대, 삼국시대에도 세대 간 갈등은 존재했을 겁니다.

     

    모든 갈등과 다툼은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같은 시대를 살고 같은 역사를 공유해야 한다면 굳이 아랫세대와 윗세대로 나눠 갈등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서로가 공생할 수 있는 '협동적 윈-윈'을 위해서는 너무나 잘 알다시피 소통이 중요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객관적인 시선으로 서로를 마주할 필요가 있겠는데요.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 책이 한몫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책에서 김 부장에 대한 어떠한 평가도 하지 않아요. 객관적인 시선으로 김 부장의 삶을 쭉 나열할 뿐이죠. 그 시선을 따라 읽다 보면 처음에는 김 부장이 괘씸했다가, 중반부에는 '에라, 잘됐다' 싶으면서도 안타깝다가, 마지막엔 측은하기까지 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직장 상사들의 태도에 항상 분노하기만 할 줄 알았던 저 스스로를 조금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마음 맞는 동기들과 함께 술 마시며 신랄하게 깎아내리기에 바빴지, 이렇게 차분히 바라볼 줄은 몰랐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그 김 부장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말이죠.. 자신이 겪은 상사 3명을 한 인물로 만들어 소설을 쓸 생각까지 한 작가가 새삼스레 대단해 보입니다. 거의 도인의 경지라고 말하고 싶네요. 다음 2권은 아랫세대인 정 대리와 권 사원의 이야기가 이어진다고 하니, 어서 읽고 또 리뷰를 남겨보겠습니다.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너무너무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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