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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는 누구인가?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바로 그 이름, 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 그는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 그리고 『노인과 바다』와 같은 작품을 통해 세계적인 스타 작가 반열에 오른다. 헤밍웨이의 훌륭한 작품만큼이나 그의 파란만장한 삶 또한 많이 회자되곤 하는데, 그의 일대기가 궁금하여 살펴보았다. 

     

    헤밍웨이는 1899년 7월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의사였던 아버지로부터 배운 사냥과 낚시를 평생의 취미로 삼는다. 헤밍웨이는 10대 시절 학교 신문지에 시와 소설 등을 기고하며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키웠고, 17살 무렵엔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쓰는 것이 꿈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10대 시절의 꿈을 그대로 실현하며 살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헤밍웨이는 캔자스시티의 스타지에서 소속 기자로 활동한다. 이 시절에 그는 신문 기사를 작성하며 감정 표현을 억누른 간결한 글쓰기 방식을 터득하게 되고, 이는 훗날 헤밍웨이 특유의 hard-boiled 스타일로 불리게 된다. 당시만 해도 굉장히 혁신적인 (충격적인) 문체였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1918년 1차 세계대전을 시작으로 총 5번의 전쟁에 자원입대한다. 특히 그는 시력이 좋지 않아 입대를 거부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로 가서 미국 적십자사의 앰뷸런스 운전기사로 활동하기도 한다. 활동 당시에 그는 폭탄으로 큰 부상을 입고 밀라노 병원에서 휴양하게 되는데, 이때 아그네스 폰 쿠로스키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헤밍웨이의 끝없는 구애에도 코로스키가 끝내 거절하고, 그는 큰 짝사랑의 시련에 빠지게 된다. 이 경험은 추후 헤밍웨이가 4번의 결혼을 하게 될 만큼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된다. 

     

    이후 헤밍웨이는 해들리 리차드슨이라는 여인과 결혼하여 토론토 스타지의 해외특파원으로 파리에서 활동, 정착하게 된다. 당시 파리는 문화와 예술의 부흥기였는데, 그는 이곳에서 피카소, 피츠 제럴드, 거투르드 스타인 등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나 예술적 교류를 나눈다. 또한 1923년 첫 작품 『세편의 단편과 열편의 시』 출간을 시작으로, 그는 다양한 작품 활동을 통해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한다. 특히 전쟁 직후 방황하는 전후세대 젊은이들을 소재로 한 작품인 『태양은 또 다시 떠오른다, 1926』와 스페인 내전 참전 후 자전적 소설인 『무기여 잘 있거라, 1929』를 통해 그는 청년문학의 대변인으로 일약 스타가 된다. 특히 『무기여 잘 있거라, 1929』는 출간 당시 세계 대공황 시절임에도 3만 부가 넘게 판매되며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1930년대에 들어서는 그는 더이상 장편 소설을 쓰지 않고, 주로 논픽션과 단편소설 위주로 집필한다. 동시에 그는 아프리카, 쿠바 등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사냥과 낚시를 즐기는데, 그러다 1940년대부터는 쿠바에 정착하여 21년간의 일생을 보낸다. 이때 그는 젊은 시절엔 세간의 주목을 받다가 어느 순간부터 글이 잘 써지지 않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로 심한 음주생활을 시작하는데, 그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다 쿠바에서의 낚시 생활을 바탕으로 1952년에 드디어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을 출간한다. 이 작품은 그의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손꼽히게 되고, 이를 통해 1953년과 1954년에 퓰리쳐상과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주는 점점 더 심해지고 우울증까지 겪으며 결국 1961년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노쇠한 노인, 바다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찬란한 청춘이었다

    『노인과 바다』의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다 늙어 쇠약해진 어부, 산티아고가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가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다. 산티아고가 가진 것이라고는 자그마한 조각배와 노가 전부. 84일째 아무것도 잡지 못하다가, 어부 인생 통틀어 가장 커다란 청새치 한 마리를 잡게 된다. 노인은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망망대해에서 커다란 청새치를 잡는 데 성공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상어 떼의 습격을 받고 만다. 죽음과의 사투 끝에 간신히 남은 것이라곤 너덜너덜해진 배와 자신의 몸뚱이뿐. 대체 무엇을 위해 그 먼 길을 떠났단 말인가? 

     

    내게 『노인과 바다』는 간결하면서도 묵직한, 덮고 나서 여운이 굉장한 책이었다. 과연 내가 노인 산티아고였다면? 도와줄 이 하나 없는 칠흙같은 바다에서 맨손으로 잡은 낚싯줄로 인해 손에는 상처와 피투성이. 따가운 햇볕에 얼굴이 타들어가고, 무시무시한 상어 떼와 싸우면서까지 노인이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건 무엇이었을까? 

     

     

    명대사가 넘쳐나는 작품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노인은 말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키나 잘 조정해. 아직 너에겐 행운이 꽤 남아 있을지 몰라."

    『노인과 바다』에서 명문장을 꼽으라하면 구절구절마다 줄을 쳐야 할 것이다. 문장들을 읽다 보면, 주인공 산티아고는 작가인 헤밍웨이와 참 많이 닮아있다. 헤밍웨이는 미국인이지만 미국에서 살지 않고, 전쟁이 발발하면 전쟁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인간의 존엄성과 인류 전체에 대한 굳은 연대의식을 위해 죽음을 무릅썼다. 또한 젊은 시절 스타 작가로서 대단한 성공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기 직전까지도 작품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던 뼛속까지 작가였다. "인간의 삶을 다룬 주제로 글을 남기고자 한다면, 반드시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던 헤밍웨이. 술에 쩌든 다음 날에도 꼬박꼬박 글을 쓰고, 하루에 쓴 단어들의 수를 벽지에 기록할 만큼 그는 노력하는 천재였다. 천재가 노력까지 하는데... 『노인과 바다』와 같은 명작이 어떻게 나왔을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쿠바를 사랑한 헤밍웨이

    헤밍웨이는 평소 라틴 문화를 매우 사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과 멀지 않으면서도 스페인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쿠바를 사랑하였고, 그곳에서 21년을 정착한다. 쿠바는 바다낚시도 즐길 수 있고, 그가 좋아하는 술 모히또가 많은 곳. 아무래도 헤밍웨이에게 쿠바는 글을 쓰기 좋은 최적의 환경이었을 테다. 세상을 떠난 뒤부터 지금까지 쿠바는 '헤밍웨이'하면 떠올리는 대표 도시가 되었고, 그가 쿠바에서 살았던 당시의 집은 미국의 지원을 일부 받아 현재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고 한다. 나도 한 번쯤은 꼭 쿠바에서 올드카를 타고 오전에는 바다에서 놀다가 오후에는 해변가 술집에서 모히또를 한 잔 들이키며 헤밍웨이의 짙은 향기를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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