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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문장이 책 보다 유명한 경우가 있다

    거의 전 세계인이 알 것 같은 "새는 알을 깨기 위해 투쟁한다"는 구절로 유명한 그 소설, 바로 『데미안』이다. 학생 시절 청소년 필독도서라며 읽기를 강요받던 책이고, 실제로 읽었을 땐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웠던 책이다. 책을 제대로 음미하고 독서를 즐길 줄 알게 된 지금에서야 본 『데미안』은 절대 '청소년 필독도서'가 아니다. 겨우 14~19살까지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과 철학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유독 이 책이 한국어 번역에 대한 갑론을박이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독일어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인 표현이 한국어로 풀이되면서 느낌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오히려 청소년기를 거친 20-30대의 청년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니 불편해하지 마시길 바란다. (참고로, 내가 읽었던 문예출판사의 번역본도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나에겐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기억에서 잊혔던 책이었다. 『데미안』을 다시 읽게 된 데는 '방탄소년단'의 '피땀 눈물(Blood Sweat & Tears)'이라는 노래가 계기가 되었다. 이 노래가 나왔을 당시에 나는 무척 바쁘고 치열하게 살았던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노래와 가수의 존재조차 몰랐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사회생활로 다친 마음의 정화가 필요했을 때, 방탄소년단의 노래와 가사를 통해 힐링받았고, 그리고 '피땀 눈물'까지 듣게 된 것이다. 방탄소년단은 '피땀 눈물'로 청춘의 성장과 방황을 이야기하는 노래인데, 바로 『데미안』 책이 이 노래 뮤직비디오의 모티브가 되었다.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뮤직비디오를 감상해보시길 추천한다. 

     

    1919년, 1차 세계대전 직후에 출간된 책

    『데미안』은 1차 세계대전 전쟁 중에 쓰이고, 전쟁이 끝난 직후에 출간된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제를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시의적절한 책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전쟁이 끝난 후, 독일과 전 세계의 사람들은 아마 정신적인 고통으로 방황했을 것이다. 친절한 이웃이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나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또는 내가 그 반대의 경우가 될 수도 있겠다.) 선과 악, 신과 악마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참혹한 전쟁을 겪은 그들은 선량한 시민으로서 자신들이 고민해왔던 모든 행동과 시간들이 무의미하고 허망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며 많은 독자들에게 충분한 공감과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책 출간 당시 작가는 '싱클레어'라는 가명을 쓰고 이 소설을 출간했다고 한다. 싱클레어는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의 이름이다. 여러 등장인물 중 왜 하필 싱클레어를 가명으로 선택했을까? 먼저 주요 인물들(싱클레어, 데미안, 크로머)의 캐릭터를 이해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대립 구도는 바로 '데미안'과 '크로머'다. '크로머'는 싱클레어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유명한 양아치인데, 하필 싱클레어가 자랑삼아했던 거짓말 때문에 크로머에게 덜미를 잡히게 된다. 그 이후로는 걸핏하면 싱클레어를 찾아가 협박하고 못살게 굴고, 이 때문에 싱클레어는 평소에 본인이 안 하던 행동들을 하며 방황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데미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매우 신비스러운 전학생이 등장한다. 데미안은 금세 싱클레어와 친구가 되는데, 크로머와의 일화를 듣고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싱클레어를 구해준다. 데미안과 크로머는 각각 '선'과 '악'을 의미하는 캐릭터로 해석되는데, 이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을 싱클레어를 빗대어 묘사하고, 작가는 그 인간 중 하나인 자신을 '싱클레어'라고 칭한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이 나를 만든다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
    (I'm learning how to love myself)
    빠짐없이 남김없이 모두 다 나
     BTS - 'Love myself'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증명하고 평가받는다. 회사에서는 서툴고 어리숙한 막내일지라도, 집에서는 듬직한 맏이일 수도 있고, 친구들에게는 장난기 가득한 말괄량이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느 장소에서 어느 시점에 있는 내가 '진짜 나'일까? 실수와 잘못을 저지른 나는 '가짜'이고, 봉사와 선행을 베푼 나여야만 '진짜'라고 말할 수 있을까? 

     

    헤르멘 헤세는 『데미안』을 통해 이 세상은 그렇게 단순한 이분법적 논리로 나뉘지 않는다고 말해준다. 태초에 세상엔 절대적 진리라는 것은 없으며, '좋다 / 나쁘다'를 가르는 것은 우리의 한쪽 눈을 가리고 남은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과 악을 가르려는 잣대를 버리고, 세상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는 뜻이다. 그것이 좋든 싫든 간에, 내가 해왔던 모든 과정들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과정이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모든 것들이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것을 완전하게 바라보자. 그게 바로 우리가 날기 위해 알을 깨부수는 첫 발길질이 될 것이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나를 가두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하자. 

     

    공감되었던 책의 구절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즉 넌 두려운 일이나 사람이 있는 거야. 그게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그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 없어.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건 그 누군가에게 자기 자신을 지배할 힘을 내주었다는 것에서 비롯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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