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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빠른 전개 - 무료체험 신청 후 예약까지는 단 이틀이면 충분했다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남자 친구와의 이별까지 견뎌내야 했다.
    하필 좋지 않은 일들은 한꺼번에 몰아쳐 나를 집어삼켰다.
    누구에게라도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으면 그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꺼져버릴 것만 같았다.

    엄마와 친구에게는 할 수 있는 이야기의 범위가 정해져 있다.
    나의 고민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근심과 걱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싫다.
    (사실 이게 가장 고질적인 문제인 것 같다. 내 속내를 잘 털어놓지 않는 것..)

    최소한의 돈으로 나의 고민을 사가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다.
    놀랍게도 있다.
    심리상담 수련생들은 전문가 자격증 취득을 위해 수련 시간을 채워야만 한다.
    그들의 공부 재료로 내가 제격이었고, 나 역시 피차일반이다.

    그래 이들을 이용하자.
    서로에게 이득이니 그 누구에게도 해가 될 것이 없어 한결 마음이 가볍다.


    2. 상담의 시작 - 오늘은 센터에 첫 방문한 날이었다

    무료체험을 신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접수를 도와주시는 분이 내가 가진 고민의 큰 주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대인관계? 부부/연인 문제? 진로문제?
    ‘한꺼번에 닥친 고민거리로 생긴 답답함과 우울감’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통화를 했던 장소가 하필 서브웨이였다..

    다 문제인 것 같으니 아무것이나 고르자.
    그래 대인관계.
    대인관계는 기본으로 중요하니까.

    전화를 끊고 이틀 만에 담당 수련생(이하 선생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우리는 약속 시간을 잡고 며칠 후에 만나기로 했다.



    정 XX 선생님과 처음 만나는 날이었다.
    약속을 잡기 위한 통화와 문자에서 느낀 것과는 다르게 사람 온기가 느껴졌다.
    역시 사람은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그래야 따듯하게 살아진다.

    선생님은 학부와 대학원에서 모두 심리학을 전공하셨다고 한다.
    나도 최근에 공부해 보고자 결심한 분야이고, 걸어야 하는 길이 얼마나 고단한지 잘 알기도 하여 무작정 존경스러웠다.

    오늘은 간단하게 서로에 대한 소개를 주로 나누었다.
    나는 어떤 고민을 가지고 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내가 하는 말을 선생님은 A4용지 한 장이 꽉 찰 정도로 빼곡하게 받아 적으시고,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경청해 주셨다.
    오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을 좀 정리해갈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었다.
    무심코 던진 말에도 선생님의 질문을 통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었다.
    “그 상황에서 어떤 감정이 가장 먼저 들었나요?”
    “어떤 점 때문에 그런 감정이 생겼을까요?”
    선생님께서 해주시는 질문 덕에 나도 그 상황을 돌아보고 내 마음을 함께 살피는 시간이 되었다.


    3. 좋은 상담이란? - 내담자의 감정을 충분히 공감해준다는 것

    내가 상담을 통해 기대한 바, 즉 상담 목표는 뚜렷하다.
    ‘현재 나의 성격이 어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만들어졌는가?’ 그 역사와 뿌리를 찾아보고 싶다.

    나는 번뜩이는 해결책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걸 원했다면 차라리 사주나 타로를 보러 갔을 것이다..
    나를 잘 모르는 낯선 사람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못 미더울뿐더러, ‘나’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선생님께서도 마찬가지로 말씀하신다.
    본인은 특히나 자격증을 취득한 전문 상담가가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섣부른 판단이나 조언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아시다시피 저는 전문 상담사가 아닌 교육 중인 수련생이에요. 해서 같은 10회라도 상담의 속도가 더딜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수련생이라는 점이기도 해요. 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부하고자 하는 열의가 있다 보니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들어줄 수 있습니다.”
    “이 상담에서 주인공은 OO님이에요. OO님이 저를 마음대로 이용하세요. 욕을 해도 좋고 틀렸다고 화를 내셔도 좋습니다.”

    세상에…
    상담을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얼마간 치료받은 것 같았다.
    이어서 울지 않고 차분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마구마구 얘기할 수 있었다.


    4. 상담을 통해 배운 것 - 스스로를 칭찬해주기, 기대와 희망은 나에게만 배팅하기

    나는 그동안 위험천만하게 오르락내리락 줄을 탔던 내 감정들을 솔직하게 털어냈다.
    그리고 좋지 않은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대로 해왔던 노력들도 이야기했다.

    나는 태생이 집순이이지만, 불안해질 때면 밖으로 나간다.
    어떻게든 약속을 만들어 밖으로 나가고,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바쁘게 쳇바퀴를 돌린다.
    내가 뭔가 숨 돌릴 틈 없이 바쁘게 살고 있다면, 그건 내가 현재 불안하다는 뜻이다.
    밖으로 나도는 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을 수 있어도 일시적인 효과는 최고다.
    혼자 있다 보면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게 되니까.
    선생님께서는 너무 훌륭하게 잘 대처했다며 칭찬해주셨다.
    기분이 좋았다. (나는 참 이렇게 단순하다..)

    또 기억에 남았던 건 내가 하는 일에 관련해서다.
    나는 전 직장에서 5년간 쉬지 않고 일했다.
    사생활 영역까지 간섭하고 조종하기 좋아했던 상사들 때문에 심리적 압박감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나는 도망치지 않았었다.
    어떤 식으로든 버텨냈었다.
    마냥 버티는 게 능사는 아닐 텐데, 너무 무식한 방법으로 대처했던 것 같아 후회가 된다.
    나도 같이 맞설걸. 당신이 생각하는 그게 아니라고, ‘잘 모르면서 나를 멋대로 평가하지 말라’고 말할걸.
    그 이야기를 듣고는 선생님께서는 나를 또 치켜세우신다.
    “OO님 너무 대단하신데요? 그런 곳에서 일을 한다면 그 누구라도 버티기 힘들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OO님은 5년이라는 긴 시간을 근무하셨네요! 업무적인 면이 OO님과 적성에 잘 맞으셨었나 봐요.”
    맞아.. 그 정도 고문당했음에도 나는 5년이나 잘 견뎌냈다.
    오.. 돈을 벌기 위한 이 업이 생각보다 내 적성에 잘 맞았나 보구나.
    그러고 보니 힘들었던 직장생활 중에도, 묵묵히 맡은 일을 잘 해내며 느꼈던 뿌듯함과 성취감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희망적이었다.
    부정하기 바빴던 시간들이 갑자기 긍정적인 기억으로 변화했던 순간이다.

    이번 0회 차 상담은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다음 회차엔 기대를 더 내려놓으려고 한다.
    기대를 거는 순간 실망할 수 있는 조건이 너무 많아진다.
    기대와 희망은 나 스스로에게만 배팅하는 것으로 하자.
    그게 내가 살아남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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