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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PI 심리검사 결과 해석; 많은 걸 깨달았던 오늘의 상담
지난번 진행했던 MMPI 심리검사의 결과 해석을 통해서 다소 충격적이면서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말을 들었다. 내 심리검사 결과지는 정반대의 성향을 지녀 보통은 양극으로 나뉘는 지표들에서 모두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타고난 기질적 측면. 나는 새로운 자극을 강하게 추구하면서도 위험회피 기질이 높은 사람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고 싶은 게 많아서 항상 새롭게 시도하지만 안정감에 위협을 느끼는 순간마다 스스로 제동을 건다는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한마디로 엑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사람이라고 정리하셨다. 나는 이 대목에서 적잖이 놀랐다. 선생님께서 내가 놀란걸 눈치채셨는지 다른 말로 돌려서 달래주셨는데, 내가 가지고 태어난 연료가 남들보다 많아서 그런 것이란다. 보통은 새로운 시도와 도전에 집중한다던지, 아니면 안정적인 것을 훨씬 더 좋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식으로 입장을 정리해 연료를 아끼는 게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의 경우엔 몸에 에너지가 많아서 이걸 해볼까 말까 고민도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따듯하게 말씀해 주셨다. 사실 나도 한쪽에만 집중하는 게 가능한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 쉬고 싶다고 느낄 때가 참 많기 때문이다..
성격적인 측면, 특히 사람 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타성이 매우 높은 동시에 관대함이 낮다. 사람을 좋아해서 여기저기 댕댕거리고, 활동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타인을 위한 행동들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조금이라도 위협이 되는 행동이나 말이 오가면 금방 내칠 수 있는 성격이라는 것이다. 내가 직장에서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느꼈던 것이 이런 포인트 때문이었는가 싶다. 직장이야말로 언제나 나에게 해로운 일들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고, 더욱이 그때마다 자유롭게 사람을 내치거나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를 낸다'는 것 자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공격적 방어기제의 일환인데, 이 감정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을 경우엔 불안과 우울감이 올 수 있다고 한다. 몇년 전 내가 겪었던 수개월간의 우울증이 바로 이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과제 : 거리두기를 통해 얻었던 것과 잃었던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보기
나는 낯선 사람들과 거리를 두려고 한다. 어느정도 거리감이 보장 되었을 때 안정감을 느끼고, 그 거리를 점차 좁혀 나가는 방식을 통해 친밀감을 형성한다. 일 예로, 나는 처음 만난 사람과 얘기할 때의 습관이 말을 하다가 끊는 것이다. 할 말이 100이라면 30 정도까지만 이야기하고 입을 다물고 만다. 40을 넘어서 그 이상을 이야기하고 싶진 않아. 아마 이런 점이 상대방이 느끼기에도 거리감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근데 써보고 나니까 다들 그렇지 않나? 나만 유별나게 거리를 두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께서는 내가 왜 낯선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싶어할지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일종의 과제를 주신 셈이다. 거리를 두면서 분명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을테니 이 두 가지를 잘 비교해보고, 나와 타인 간의 거리가 어느정도에서 출발했으면 하는지 그 정도를 생각해보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거리를 두면 좋은 점: 내 할 일만 하고 끝남. 신경 쓸 일이 줄어듦. 뭐 얽히고설킬 일이 없으니 편함. 개인적인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침범될 일이 없다. 보호받을 수 있다. 내 약점이 드러날 일이 없다. 간섭받을 일이 없다. 마음이 편하다.
거리를 두면 안 좋은 점: 팍팍하다. 본딩이 어려워서 친해지기 너무 어렵다. 조용하고 심심하다. 마음이 불편하다. 어떻게 보면 내가 거리를 두려고 했던 사람들이 나에 대해 느꼈던 것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나는 왜 거리두기를 택했을까? 그리고 처음 만난 사람과의 거리는 대체 몇 미터로 정해야만 할까? 몇 미터가 상대와 나 모두에게 적당한 것일까? 분명 나도 이러한 내 성격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나도 마냥 낯가리는 게 좋지만은 않단 말이다.. 다음 상담시간까지 장단점을 충분히 더 생각해보고 그럼에도 가져가야 할 것인지 고민해보기로 했다.
선생님과의 상담 내용, 대화 전문 :
"처음 만난 사람을 무서워하는 감정. OO님은 무얼 무서워할까요?"
"음, 결국 이 사람도 언젠가는 나를 뒤에서 평가하고 욕하게 되겠지라는 생각 때문에 무서워요. 여러 명의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이 중에서 그래도 제일 나에게 덜 해로운 사람이 누굴까 찾고, 그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해를 끼친다는 게 어떤 걸 의미해요?
"제 입장에서 직장에서 해를 끼친다는 건, 저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도 제가 없는 자리에서 저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한다던지 하는 것이요."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한 평가가 오고 가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해로움이군요."
"네 저는 그런 것에 제일 민감한 것 같아요. 서로 업무적으로 부딪혀서 싸우는 게 되는 상황보다도 더 해롭다고 느낄 정도로요."
"이게 OO님한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가 봐요. 누구나 싫긴 해요. 누구나 다 뒤에서 내 얘기를 하면 싫죠. 그런데 오늘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서도 벌써 누군가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OO님에게 굉장히 아픈 부분인가 봐요. 어떤 느낌이에요? 뒤에서 누군가 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얘기를 한다는 것은?"
"억울하고 그 사람에 대한 안 좋은 감정도 있지만, 또 저 스스로도 왜 그걸 가서 따지지 못할까? 왜 그렇게 저 없는데서 말씀하시지 마세요~라고 따끔하게 말하지 못할까? 하는 제 탓을 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답답하셨겠어요. 알아채기 힘들겠지만 왜 그 이야기를 못하는 것 같아요?"
"막상 또 하려고 하면 또 굳이 이런 사사로운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직장에서 이런 일 가지고 시간을 할애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렇게 말할 용기가 아직 없어요. 말하다가 제가 울 것 같아요."
"아휴 그럼요. 어렵죠.. 어쨌든 나도 그 사람과 싫은 소리를 해야 하고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잖아요. 상대가 어떤 반응을 할지도 모르겠고, 무섭겠죠. 그럼에도 굳이 얘기를 하고 싶은 이유는 나는 일만 하고 싶은데 자꾸 신경 쓰이게 하는 것 자체가 회사 입장에서도 조직 운영의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 일 같지도 않고요. (...) 반대로 오히려 이야기를 해서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직장 생활에서 더 효율적인 방법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생산적인 목표를 위해서 우리의 조직 문화를 더 개선하기 위해서 약이 되는 충고를 해주는 거라고 생각해보면 어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그렇게 말할 용기가 그 전보다는 조금 더 생긴 것 같은데 그 전에는 그게 전혀 안되었어요. 대부분 제가 겪었던 일들이 인턴~사원 시절에 겪었던 일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매니징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서 좀 그게 더 심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
"이젠 더 잘할 수 있겠다고 말씀하셔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혹시나 제가 말씀드린 것이 충고처럼 들렸을까 봐 걱정되어서요."
"근데 이제는 그렇게 해야죠.. 그렇게 못하면 이제 힘들어서 직장 생활을 더 오래 못할 것 같아요."
"아까 대인관계를 시작할 때 무서움의 감정이 든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어떤 감정일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제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일단 너무 불쾌하죠. 그리고 그 행동의 요점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본인이 저와 매우 친밀한 관계인 것처럼 착각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오히려 제가 마음이 먼저 오픈될 때까지 기다려준 사람들에게는 제가 한 번 마음이 열리면 굳이 안 해도 될 이야기들을 막 하기도 하거든요."
"음 단계가 필요했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요. 처음부터 훅 들어오지 않고, 겉에서부터 천천히 쓸고 들어오면 나도 마음을 열고 얘기할 수 있는데.. 들으면서 느끼는 건 OO님이 거리를 약간 두는 걸 편안히 생각하고, 좀 천천히 여는 것을 선호하는 편인데 이걸 나의 페이스를 존중해주지 않고 훅 들어온다거나 너무 빨리 시작하는 사람들이 당황스러운 거죠. 아까 화가 나고 분하다고 말씀해주셨잖아요. 이런 공격적인 성향들이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나오는 방어기제이거든요. 내 거를 지키고 싶고, 내 선을 지키고 싶은 감정이요. 이런 감정이나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것인데 낮은 지위 등 여의치 못한 상황에서 화를 못 내거나 분한 감정을 표출해내지 못하게 되면 우울해지죠. 우울하고 답답해져요. 이제는 좀 더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고 하셨으니까, 그리고 할 말은 할 수 있을 정도로 직급도 좀 더 올라갔으니까 이전만큼 우울하고 답답하시진 않겠다 싶어요. 이렇게 생각해보니 상사들과의 문제가 이해가 가요. 상사는 사실 거리두기를 권위로 뚫고 들어올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나를 해치기 굉장히 쉬운 역할의 사람들이라 공교롭게 나랑 마찰이 잦았던 것일 수도 있겠어요."
차근차근 단계가 필요했던 나 vs. 단계없이 훅 치고 들어올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상사.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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